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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불회괘불탱

오불회괘불탱

국보 제296호인 오불회괘불탱화는 국내에서 세번째로 오래된 것으로써 조선 인조 6년(1628, 승정원년) 범형비구니에 의해 그려진 군집도 형식의 불화이다.
구름을 이용하여 화면을 상, 중, 하 3단으로 구분지은 다음 오불회와 도솔천궁을 적절하게 배치한 이 괘불도는 길이 6.56m, 폭 4.04m로 비록 중간 크기이긴 하지만, 세련된 인물의 형태와 유려한 필선, 화사하면서도 은은한 색채를 사용함으로서 예배자들을 압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의 불교 그림은 단일구도를 이루고 있는데 반하여 이 괘불도에서는 삼신불을 묘사한 상단과 삼세불의 세계인 중단, 수미산 정상의 도설 천궁을 표현한 하단 등 3단 구성법을 구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화폭 전면에 펼쳐져 있는 밝은 색조의 구름과 불옷의 선명한 홍색으로 경쾌함을 보여주며, 단아하고 세련된 인물의 형태와 짜임새 있는 구도, 섬세하고 치밀한 필치 등에 있어서 당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17세기 전반의 불화 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삼불회괘불탱

삼불회괘불탱

보물 제1256호로 1977년 9월 22일에 지정되었다.
1710년(숙종36)에 조성된 마본채색(麻本彩色)의 대영산회도(大靈山會圖)는 가로 4.54m, 세로 6.28m의 화폭에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했을 때의 모임인 영산회(靈山會)를 그린 것으로 거신형 광배에 결가부좌한 석가불은 팔대보살, 십대제사, 사리불, 제석천과 범천, 사천왕, 금강역사 등이 협시들로 겹겹이 에워싸여 있다.
신체에 비해 다소 크게 묘사된 방형의 얼굴은 표정이 경직되고 엄숙하며, 신광안에는 변형된 화문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수미단 아래에는 사리불이법문을 청하고 있다.
문수, 보현보살과 나머지 보살들도 보존과 같은 얼굴 표정을 짓고 각기 합장을 한 모습이며, 제석, 범천은 약간 작은 크기와 채색을 달리한 얼굴을 하여 다른 보살들과 구별되고 있다.
상단에는 이중륜광의 노사나불과 아미타불이 각기 협시를 거느리고 배치되어 있는데 노사나불은 보살형으로 영락장식이 화려한 보관에 설법인을 짓고 있으며, 아미타불은 지장보살과 대세지보살등 사대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이들 사이의 보탑은 화면을 구획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최 상단에는 용왕, 용녀,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등이 배치되어 있고 가운데에는 반원형의 광배 안에 9구의 보사로가 좌우 5구씩의 십방제불(十方諸佛)이 천상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괘불도는 하단은 영산회상도, 상단은 노사나불과 아미타불을 묘사하고 있어 상단을 떼어내어도 단독의 영산회상도를 보여주는 독특한 도상인데 삼심불과 삼불화를 가장 간략하게 묘사한 것으로, 이런한 간략화 시키는 구성은 조성후기에 유행하였다.

혜소국사비

혜소국사비

혜소국사비(보물제488호)는 혜소국사( 慧昭國師, 972-1054)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로서, 비문(碑文)은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김현 선생이 짓고, 글씨는 전중승, 민상제 선생이 구양순체(歐陽詢體)로 썼다.
혜소국사는 972년(고려광종3) 안성에서 출생하였으며, 속명이 이씨요, 이름은 정현(鼎賢)으로 10세에 삭발 입산하여 광교사 충회에게 구법하고, 17세에 영통사에서 융철(融哲)에게 가츠림을 받으며, 28세에 왕명에 의하여 고승으로 많은 사람의 후앙을 받았다.
대사는 말년에 칠장사에서 수도하면서 이절을 크게 중창하였으며, 1054년(문종8)에 이 절에서 83세로 입적하였다.

인목왕후어필칠언시

인목왕후어필칠언시

유형문화재인데 보물 제1627로 지정되었다.
인목대비친필족자는 인목대비가 아버지 김제남(金悌男)과 영창대군을 위하여 칠장사를 원당으로 삼아 사찰을 중건하여 친히 김광명(金光明)에게 최승경(最勝經) 10권과 친필족자 1령을 하사한 것인데, 현재는 친필족자 1령만 보존되고 있다.
인목대비는 1584(선조 17)년에 태어나 1602(선조 35)년 왕비로 책봉되어 가례를 올렸으며 선조의 유일한 적통인 영창대군의 모후이다.
칠장사에 소장중인 인목대비 친필족자는 대비가 부친인 김제남 선생과 영창대군을 위하여 칠장사(七長寺)를 원당(願堂)으로 삼고자 중건하면서 친히 금광명최승왕경(金光明最勝王經) 10권과 친필족자 1령(一嶺)을 하사한 것인데, 현재는 인목대비 친필족자 1령만 경기도 향토 사료실(鄕土史料室)에 보존되어 있고, 금광명최승왕경은 동국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인목대비 칠필족자는 인조(1623~1649)연간에 만든 것으로 세로 110㎝, 가로 50㎝의 직사각형으로 28자가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노우용력기다년(老牛用力己多年)하니,
  영파피천지애면(領破皮穿只愛眠)하고,
  이파기휴춘우족(犂耙己休春雨足)한데,
  주인하고우가편(主人何苦又加鞭)인가?"
이를 번역하면 아래와 같다.
"늙은 소 힘쓴지 이미 오래 되었으니, 목덜미 쭈그러들고 가죽은 헤져서 졸립기만 하고, 쟁기질 다 끝나고 봄비 또한 넉넉한데, 주인은 어찌하여 또 채찍을 든단 말인가?"
이 한시(漢詩)는 늙은 소의 고달픔과 그것을 바라보는 주인의 애처로운 마음을 자신의 처지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칠장사 삼층석탑

칠장사 삼층석탑

유형문화재 17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재질은 화강암으로 되어있다.
이 석탑은 원래 죽산 옛 사지에 각 주재들이 흩어져 있던 것을 죽림리 460번지 성원목장에 복원한 것을 2005년 11월 28일 칠장사로 이전 설치한 것이다.
이 삼층석탑(경기문화재 179호)은 본래 죽산대사 천변의 구사지에서 인근 농원(강성원목장)에 옮겨져 30여년간 불모지에 머물다가 이를 안타까워하던 안성시 당국과 문화재위원의 도움으로 본 고향인 칠장사에 귀향하였다.
이후로 사찰을 찾는 수많은 불자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 분향예배가 끊이지 않으니 비로소 잃어버린 세월을 되찾아 천년의 한을 푼 탑이라 할 것이다.

동종

안성시 향토유적 종 제25호로 1986년 5월 22일에 지정되었다.
밑둘레 222㎝, 밑지름 75㎝, 밑두께 6.5㎝로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대웅전 내에 있는 이 동종은 종신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어, 조선후기 범종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동종의 상단 용 모양은 쌍용으로 옆에 지름 2㎝의 원공(圓孔)이 있으며, 용은 여의주를 물고 있다.
상대(上帶) 대신 원좌(圓座)내에 범자(梵字)를 8군데 조각하고 범자 밑에는 4유곽(乳廓)과 원형두광(圓形頭光)의 보살입상(菩薩立像)을 서로 바꾸어 조각했다.
명문은 「건륭사십칠년임인십 일월일시(乾隆四十七年壬寅十一月日時) 죽산도호부사이언충(竹山都護府李彦忠)」이라 했는데, 건륭47년은 조선조 제22대 정조6년(1782)이다.

철당간

철당간(鐵幢竿)

조선시대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1973년 7월 10일 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었다. 총 높이 11.5㎝, 직경 0.4㎝. 지주 높이 3m이다.
당간이란 부처와 보살의 공덕과 위신을 기리는 장엄용 불교 용구인 당(일종의 깃발)을 달기 위한 깃대를 말한다.
칠장사에서 약 200m 앞쪽 길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주는 동서방향의 장축을 지닌 기단위에 세워졌는데, 기단은 모두 3매의 석재로 이루어져 있다.
지주는 상면 바깥의 모를 주경 둥글게 처리하고 그 위로 1조의 종선(縱線)을 표현한 것 외에는 장식을 하지 않았다. 당간은 원래 30개의 원통이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15개의 원통이 남아있으며, 제일 아래칸은 길이 68㎝, 지름 45㎝의 원통으로 하단에 각 칸칸 연결을 위한 폭 6㎝의 반구형 마디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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